젊은 칼럼니스트 이근형 군이 쓴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해 12월 작고한 우리나라 최고의 작사가 박건호는 1970년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수많은 포크록 가수 지망생들을 하나하나 챙겨가며 보듬어주었다. 그 무리들 중에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능하고 허스키한 보컬로 단연 눈에 띄는 지망생 하나가 있었다.
박건호는 훗날 그 지망생의 앨범 속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재능이 아주 많아 오버그라운드에 올려 보내면 성공할 것 같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을 살펴보면 결국 "재능은 많지만 이상하게 히트를 하지는 못했다"로 마무리 된다. 그 지망생은 박건호라는 거물급 인사의 지원 아래에서 커가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음악을 위해 박차고 나온 듯하다. 바로 그 사람이 이윤수의 명곡 <먼지가 되어>를 작곡한 아티스트 이대헌이다.
밥 딜런을 존경하다
어쩌면 이대헌은 말 그대로 세계 대중음악사에 나올법한, 외길을 걸어왔던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적 지원과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해주는 기획사나 레이블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머리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을 위해 우직하게 노래를 불렀다.
유명 레이블 아니면 어떠한가, 허름한 레이블이나 기획사를 통해서도 나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야. 바로 이런 정신은 한 시대를 풍미한 포크록 가수들의 진보적인 생각, 그리고 주류에 배치되어서 비주류의 길을 향했던 사례와 일치하다고 볼 수 있다.
이대헌이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 으뜸은 미국 포크록의 제왕 밥 딜런이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노래하며 포크 음악 무대에 돌연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나오는 밥 딜런의 당돌함이, 유명 레이블을 한사코 마다했던 이대헌에게 큰 영감을 줬으리라 생각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나의 노래' 를 불렀던 이대헌
1956년 8월생인 이대헌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오락부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음악가 이대헌의 첫걸음인 셈이다. 그는 94년 보컬 그룹 <데블스>에서 보컬과 리드 기타를 맡았고, 이후 이종환이 운영하는 쉘부르에 싱어송라이터로 발탁, 본격적으로 언더그라운드 생활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대헌은 이곳에서 노래도 짓고 손님들에게 라이브 어쿠스틱 연주도 들려주는 등 활발한 음악 생활을 했다.
이대헌은 쉘부르에서 싱어송라이터로 영입된 이후부터, 서울 및 경기 각지를 돌아다니며 라이브 공연에 매진했다. 그의 기록들을 보면 1996년부터 종로 무교동 명 동 이태원 압구정동 미사리 등 라이브 카페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찾아가 공연을 했다. 90년대 중반까지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라이브 카페 내에서의 공연이 꽃을 피웠는데, 그것은 큰 꿈을 안고 오늘도 노래를 부르는 많은 무명 가수들의 장(場)이나 다름없었다. 미사리에서 라이브 무대로 스타가 되어 오버그라운드로 올라온 가수 박강성을 성공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라이브 카페 트렌드가 한창 무르익을 때 그 중심에는 이대헌이 있었다. 그는 박강성처럼 미사리에서 실력을 쌓아 오버그라운드로 올라갈 의욕이나 목표는 없었고, 그저 압구정이나 명동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자기 몫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라이브 공연 경험에 비해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당시 라이브 카페에 찾아와서 노래를 들었던 고객들, 그리고 이대헌과 함께 팀을 이뤄 서로를 다독여줬던 같은 가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쿠스틱 기타 좀 친다는 사람들은 이대헌 하면 다 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여전한 포크록의 정신은
이대헌의 2002년 1집 <시락> 의 재킷을 열어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주변의 자연 경관, 일상생활 속의 아담한 물건들, 그리고 어머니, 아이들, 친구들이 나의 음악의 원천이다’라고. 주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사랑 노래만 만들기보다는, 포크록의 참 의미를 먼저 생각하고 느긋하게 현실을 바라보며 노래하겠다는 의지가 이 문장 안에 나타나 있다. 앞서 언급한 그의 1집도 그렇고, 사실 그의 노래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심오할지라도) 굉장히 소박하다. 통일을 염원하는 시를 가사로 본 따 만든 토속적 멜로디의 <영산강>, 쉘부르에서 만나 결혼한 자신의 아내 정인화씨와 합작하여 만든 <영원한 나의 사랑>, 안개비가 내리는 정취를 노래로 잘 표현한 <안개비가 내리네> 등 반짝반짝 거추장스러운 표지를 다 떼어내고 소박함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포크록의 진면목이 무엇인가.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바탕으로 느긋하게 부르는 가운데, 가사나 그 곡에 내포되어있는 내용은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져 있지 않은가. 이대헌은 시인 최규창의 작품을 <영산강>이라는 노래로 만들어 자신의 1집 첫 번째 트랙에 삽입시켰다. 이 곡은 상당히 토속적인 멜로디로 어떻게 보면 전래동요의 단면과도 닮았는데, 그 안의 내용은 간절하게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대헌 자신은 모든 부와 명예 다 떨치고 내 음악만을 하겠다는 소박한 심정이 있지만 이렇게 포크록의 정신만큼은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라이브 카페의 음유시인으로, 음지에서 자신만의 노래를 만든 이대헌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포크록 및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가수 이윤수가 2집 앨범에 쓰일 노래 작곡을 그에게 부탁한 것이다. 부드러운 보컬로 많은 팬들의 가슴을 적신 이윤수가 언더그라운드의 이대헌과 손을 잡은 이 사건은, 이대헌의 음악 커리어에 가장 크고 빛나는 별 하나를 달아주게 되었다. 이대헌은 이윤수의 2집에서 두 곡을 작곡해줬는데, 5번 트랙 <사랑했던 이에게 바침>과 9번 트랙 <먼지가 되어>가 그것이다.
작곡가로 거듭 나게 한 <먼지가 되어>
송문상이 작사하고, 이대헌이 작곡한 <먼지가 되어>는 팬들의 엄청난 환호를 차치하더라도, 이윤수와 이대헌 두 사람에게 크나큰 훈장이 되었다.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주변의 포크록 아티스트들은 이 곡을 레퍼토리로 사용했으며, 포크의 전설 김광석 역시 <먼지가 되어>를 불렀다. 이 곡으로 이윤수만 유명해진 게 아니라, 작곡자 이대헌에게도 잠시 오버그라운드 세계의 달콤한 영광이 찾아왔다. 이대헌은 <먼지가 되어> 히트 이후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딱지를 떼고 유능한 작곡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이대헌은 오히려 뒤편에 서서 여러 가수들이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지켜보며 조력을 해주거나 다듬질을 해주는 등 '2인자'의 역할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딸을 배우로 키웠지만, 오버그라운드에서 예능을 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이었다. <먼지가 되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몸집을 더 불릴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갔다. 원래 있던 자리, 바로 라이브 카페로 말이다.
미사리로 돌아간 포크록 외골수
이대헌은 이후 시인 및 가수들이 모여 창조 활동을 벌이는 '시락회'를 결성했고, 2000년에는 포크싱어 연합회 이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예능인들의 자선 활동과 인맥 교류의 장을 만들기 위한 모임 '아세만사(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찌되었건, 그는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계속되는 음악 활동과 더불어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최근 KBS <상상플러스 시즌2>에 출연한 배우 이하나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로 데뷔해 방송 3사의 드라마에 모두 발을 담근 차세대 스타 이하나의 아버지가 <먼지가 되어>를 작곡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모든 출연진들이 깜짝 놀라 그녀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방송에서 <먼지가 되어> 라이브 장면이 몇 초간 소개되었고,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는 부녀의 이름이 검색 순위 1,2위를 차지했다.
검색순위 1위 오른 아버지와 딸
방송이 나간 이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대헌의 프로필과 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것이다. 비주류에 몸을 담고, 나만의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도 그 역량이 대단하거나 재능이 특출 나면, 언젠가는 오버그라운드의 레이더를 피해갈 요량이 없다. 이대헌은 지금까지도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 ‘7080 피아노’에서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들려주는 언더그라운드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거대기획사의 배우가 되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드는 딸의 발언으로 그의 재능이라 할 수 있는 <먼지가 되어>는 다시금 젊은 세대들에게 알려졌다. 이제 ‘이하나의 아버지 이대헌’이 아닌, '포크록 가수' 이대헌을 기대해볼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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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에 이하나씨가 나오셨을 때 봤는데 노래 참 잘 하시더라구요..
은지원,이효리씨를 비롯해 젊은층도 먼지가 되어..를 알고 있었고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어도 잊혀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은은하게 사랑받는 곡이 되고 있죠.
이런 곡이 오래가죠..이하나씨를 보면 참 맑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와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으신 듯..암튼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